진주 강씨 (강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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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주 강씨(강이식)는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강이식은 제나라 강태공의 후손으로, 수나라에 맞서 싸우다 고구려에 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주 강씨는 박사공파, 소감공파, 시중공파, 은열공파, 인헌공파 등 5개의 주요 파로 나뉘며, 각 파는 고려 및 조선 시대에 걸쳐 다양한 인물을 배출했다. 특히 박사공파는 인구가 가장 많으며, 강감찬 장군을 배출한 인헌공파도 유명하다. 진주 강씨는 경상남도 진주를 본관으로 하며, 전국 각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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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강씨 (강이식)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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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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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 진주 강씨 |
이칭 | 진양 강씨 |
관향 | 경상남도 진주시 |
시조 | 강이식 |
나라 | 한국 |
중시조 | 강계용 강위용 강원용 강민첨 강궁진 |
집성촌 | 평안북도 정주시 함경남도 북청군 경상남도 남해군, 진주시 경상북도 안동시, 영풍군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경상남도 거제시 구영리 제주시 한림읍, 애월읍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경기도 이천시 |
인물 | 강맹경 강희안 강희맹 강구손 강홍립 강항 강세황 강필리 강위 강영훈 강신욱 강만수 강재섭 강운태 강명순 강승규 강석호 강금원 강경희 강경진 강계대 강성국 강동원 강태현 |
년도 | 2021년 |
인구 | 1,321,575명 |
순위 | 6 |
비고 | 진주강씨 인터넷 전자족보 |
가문 정보 | |
가문명 | 진주 강씨 |
한자 표기 | 晉州 姜氏 |
국가 | 조선 |
영지 | 진주시 |
가조 | 강이식 |
저명한 인물 | 강맹경 강희맹 강홍립 강항 강재섭 강동원 강태현 |
각주 | 진주강씨 인터넷 전자족보 |
2. 역사
진주 강씨는 한국의 주요 성씨 중 하나로, 김, 이, 박, 최, 정에 이어 6번째로 인구가 많은 성씨이다. 200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2.27%를 차지하며, 당시 325,288가구, 총 1,044,386명으로 집계되었다. 2015년 통계에서는 진주 강씨는 968,109명, 진양 강씨는 193,217명으로 조사되었다.[3]
지역 | 2000년 가구 수 | 2000년 인구 (명) |
---|---|---|
서울 | 65,409 | 209,786 |
경기 | 52,957 | 167,797 |
경남 | 35,072 | 113,399 |
부산 | 31,969 | 103,142 |
2. 1. 기원
진주 강씨(晉州 姜氏)의 시조는 삼황오제 중 한 명인 염제신농씨(강석년, 姜石年)이다. 강석년은 강수(姜水) 강가에서 자라면서 성을 강(姜)으로 삼았다고 한다.[1][2] 진주 강씨의 비조(鼻祖)는 제나라 초대 국왕 제 태공 강상(姜尙)이다.2. 2. 시조 강이식
고구려의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를 지낸 강이식은 진주 강씨의 시조이다. 598년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5만의 정병을 이끌고 나가 수나라 군대에 맞서 싸웠다. 비록 육전에서는 패배했지만, 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나가 주라후가 이끄는 수나라 수군 30만 명을 크게 격파하는 공을 세웠다.[7]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강이식의 묘는 만주 심양현 봉길선 원수림 역 앞에 '병마원수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라는 큰 비석과 함께 있었으나, 문화대혁명 시기에 파괴되어 현재는 돌조각과 거북좌대만 남아있다고 한다.[7]
강이식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 871-1에 봉산사가 세워졌으며,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
2. 3. 고려시대
고구려 멸망 후, 동신제가 안동 지역에서 인재 등용을 위해 과거를 시행하였다. 강진(姜縉)은 676년에 과거에 수석으로 급제하여 태중대부 판내의령을 역임하던 중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졌다.[7] 이로 인해 강진의 자손들은 본관을 진주(晉陽·晋山)로 하는 진주 강씨가 되었다.2. 4. 조선시대
200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진주 강씨는 325,288가구, 총 1,044,386명으로 집계되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65,409명, 경기도 52,957명, 경남 35,072명, 부산 31,969명 순으로 많았다. 강씨는 한국 전체 인구의 2.27%를 차지하며, 김(21.59%), 이(14.78%), 박(8.47%), 최(4.72%), 정(4.37%)에 이어 6번째로 인구가 많은 성씨이다.2015년 통계에서는 진주 강씨는 968,109명, 진양 강씨는 193,217명으로 조사되었다.[3]
2. 5. 일제강점기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이 시기 진주 강씨 인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희생을 감수했다.[1]특히, 1919년 3·1 운동 이후에는 의열 투쟁을 전개한 강우규 의사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강우규 의사는 인헌공파 후손으로, 1919년 9월 2일 일본 총독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의거를 일으켰다.[1]
3. 분파
진주 강씨는 크게 은열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인헌공파의 5대 파로 나뉜다. 이 중 박사공파가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각 분파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분파 | 시조 및 주요 인물 | 특징 | 비고 |
---|---|---|---|
박사공파(博士公派) | 강계용(姜啓庸, 고려 원종 때 국자박사), 강희안, 강희맹, 강홍립 등 | 후손들이 어사공파, 통정공파, 통계공파 등으로 분파. | 2021년 기준 진주 강씨 인구 중 79.9% 차지[3] |
소감공파(少監公派) | 강위용(姜渭庸, 고려 때 사도소감), 강태(姜泰, 오랑캐 침입에도 부친상 지킴) 등 | 후손들은 대상공파와 태사공파로 나뉨. 황해도와 평안도에 주로 거주, 효자 정려 배출 가문. | 2021년 기준 진주 강씨 인구의 1.513% 차지[3] |
시중공파(侍中公派) | 강원용(姜遠庸), 강윤보(姜允輔, 정몽주와 교류), 강행(이시애의 난 평정) 등 | 강원로(姜元老)가 관서대장군을 지내 관서대장군파라고도 함. | |
은열공파(殷烈公派) | 강민첨(姜民瞻, 귀주대첩에서 강감찬 장군 부장), 강세황(조선 후기 화가), 강이오(혼천시계 제작), 강윤(앙부일구 제작) 등 | ||
인헌공파(仁憲公派) | 강감찬(귀주대첩 영웅), 강석기(姜碩期), 민회빈 강씨, 강우규(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등 | 강감찬의 호를 따서 인헌공파라 부름. |
3. 1. 박사공파(博士公派)
강계용을 중시조로 하는 박사공파는 진주 강씨의 주요 분파 중 하나이다. 강계용은 고려 원종 때 국자박사로서 일본에 통신사서상관으로 파견되었다. 박사공파는 그의 손자 강사첨이 어사를 지낸 연유로 '''어사공파'''라고도 불린다.강사첨의 5세손 중 강회백의 후손은 '''통정공파'''를, 강회중의 후손은 '''통계공파'''를 이루었다.
통정공파의 파조 강회백은 고려 말 대사헌을 거쳐 조선 건국 후 동북면도순문사에 올랐다. 그의 아들 강석덕은 세종의 후궁인 영빈 강씨의 아버지로, 개성유수와 지돈령부지사 등을 역임했다. 강석덕의 아들인 강희안과 강희맹 형제는 통정공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강희안은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고, 시서화삼절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강희맹은 문장과 서화로 명성을 떨쳤으며, 세조의 총애를 받아 고위 관직을 역임했다. 강희맹의 아들 강구손은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냈고, 강희안의 4촌 형인 강맹경은 세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통계공파에서는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강사상과 평난공신으로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강신이 대표적이다. 강신의 아들 강홍립은 정묘호란 때 활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강인은 임진왜란 때 호성공신에 오르고 진창군에 봉해졌다. 강인의 후손들은 고종 때에 이르러 강준흠, 강시영 등 판서급 인물을 다수 배출하여 명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강홍중은 인조 때 화포술을 개발한 인물이다.
2021년 기준으로 진주 강씨 전체 인구 1,321,575명 중 79.9%인 1,056,000명이 박사공파에 속한다.[3]
3. 2. 소감공파(少監公派)
소감공(少監公) 강위용(姜渭庸)은 고려 시대에 사도소감(司徒少監)을 지냈으며, 진주 강씨 가문의 5대 파조 중 소감공파의 파조이다.[3]그의 증손자 강태(姜泰) 후손은 '''대상공파(大相公派)'''를, 강건(姜健) 후손은 '''태사공파(太師公派)'''를 형성하고 있다. 소감공파에서는 파조 위용의 아들로 검교(檢校)를 지낸 강문로(姜文老)와, 강문로의 아들로 군기시사(軍器侍事)를 지낸 강충(姜冲)이 유명했다.
강충(姜冲)의 아들인 강태는 가선대부 대상(嘉善大夫 大相)으로 있으면서, 오랑캐의 침입을 당했으나 부친상을 당하여 엎드려 곡하면서 한사코 자리를 뜨지 않자, 오랑캐도 감탄하여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전한다.[3]
상장군(上將軍) 강희령(姜希齡)과 좌의정(左議政) 강사덕(姜思德)이 뛰어났으며, 감찰(監察)을 역임한 강중인(姜重仁)· 강뢰(姜賚)· 강순(姜洵) 등과 충순위(忠順衛) 강육동(姜淯東), 교위(校尉)를 지낸 강휴(姜眭)가 이름을 날렸다.
대상공 강태의 3대손 (초휘는 사경) 강공연(姜公衍)은 문장과 사상이 뛰어나시었다. 1359년 (공민 8년) 사마시에 등제하고, 고려에서는 단상제이지만 부친상을 당해 여묘 3년을 지내고, 1374년 (공민 23년) 과거에 급제해 판군기시사를 역임후에 형조전서에 증직 되시었고 효자정려가 섰다.
대상공 강태의 아우인 태사공 강건(姜健)은 봉익태사 판호조전서에 추증되시었다. 강건의 3대손 강사덕(姜思德)은 1397년(태조 6년) 남포진첨제사 재직중에 왜적을 8급을 베는 공적을 세우고, 1399년(정종 1년) 형조 전서에 올랐다.
소감공의 후손들은 황해도 안악(安岳)을 중심하여 주로 황해도 북부지역과 평안도 덕천(德川) 정주(定州)에 많이 거주하고 있고, 현재 남한에는 황해도에서 남하한 후손 일부가 대대로 족보 지키며 경남 의령, 강원도 삼척, 경북 봉화지방에서 분포 거주하고 있다. 또한 고려 ~ 조선을 거쳐 후손 대대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0126 효자정려]를 배출 한 파이다.
2021년 기준 진주 강씨 전체 1,321,575명 인구의 1.513% (약 2만명)가 소감공 강위용 파이다.
3. 3. 시중공파(侍中公派)
姜渭庸중국어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파는 고려 시대에 형성되었다. 강위용은 고려 시대에 사도소감(司徒少監)을 지냈으며, 강문 5대 파조 중 하나인 소감공파의 파조이다.3. 4. 은열공파(殷烈公派)
은열공파는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귀주대첩에서 거란을 물리친 은열공 강민첨을 중시조로 하는 파이다. 강민첨은 고려 광종 14년(963년)에 진주에서 태어났다. 현종 3년(1012년) 동여진(東女眞)이 영일과 청하로 쳐들어오자 문연(文演), 이인택(李仁澤) 등과 함께 안찰사(按察使)로서 격선(戈船, 뾰족한 못이 박힌 일종의 철갑선)을 이끌고 이들을 격퇴하였다. 1018년에는 거란의 소배압(蕭排押) 등 10만 대군이 고려를 침입하자 강감찬의 부장으로 참전하여 흥화진(興化鎭)에서 대파하였다. 패배한 소배압의 군대가 개경(開京)으로 곧바로 쳐들어오자 이를 다시 추격하여 자주(慈州)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유명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인 1019년에 응양상장군(鷹揚上將軍)에 임명되었고, 곧 승격하여 추성치리익대일등공신(推誠致理翊戴一等功臣)에 책록되었으며, 1020년에는 지중추사병부상서(知中樞事兵部尚書)가 되었다. 1021년 11월 12일 59세로 사망하였고, 태자태사문하시랑(太子太師門下侍郎)에 추증되고 은열(殷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3]그의 후손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 평론가로 유명한 강세황이 있다. 그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시, 서, 화에 열중하였고, 영조의 권유로 61세에 들어서 관직에 나가 병조참의와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그는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고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고, 풍속화, 인물화를 유행시켰다. 그의 제자가 바로 김홍도이다.
그의 후손으로 강이오와 강이중은 혼천시계를 제작했으며, 강이오의 아들로 한성판윤을 지낸 강윤(1830~1898)과 강건(1843~1909) 형제는 휴대용 해시계(앙부일구)를 만들었다. 또한 그들 아들들도 앙부일구를 제작했다.[3]
3. 5. 인헌공파(仁憲公派)
강궁진(姜弓珍)을 시조로 하는 인헌공파는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강궁진과 그의 아들 강감찬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강궁진은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삼한벽상공신으로 봉해졌으며, 여후(呂侯)라는 칭호를 받았다.강감찬은 귀주대첩에서 거란 10만 대군을 격파한 고려의 명장이다. 1030년(현종 21)에는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인헌(仁憲)이다.[3] 강감찬의 출생지는 금천으로 알려져 있어, 인헌공파를 금천 강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헌공파의 주요 인물로는 조선 인조 때 우의정을 지낸 강석기(姜碩期)가 있다. 그의 딸 민회빈 강씨는 소현세자의 빈이었으나,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후 인조에 의해 사사되었다. 민회빈 강씨의 친정 식구들 또한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되는 비극을 겪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강우규 의사가 인헌공파 후손으로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4. 집성촌
지역 | 인구 | 총 인구 대비 비율(%) |
---|---|---|
경상남도 진주시 | 20,851 | 6.36 |
경상남도 남해군 | 1,692 | 4.12 |
전라북도 순창군 | 862 | 3.59 |
경상북도 영주시 | 3,411 | 3.32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24,210 | 6.09 |
다음은 진주 강씨의 주요 세거지(발상지)이다.
- 서울특별시 금천구, 관악구
- 경기도 이천시
- 경상남도 남해군, 진주시
- 경상북도 안동시, 영주시
- 전라남도 나주시
- 전라북도 순창군, 남원시, 김제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귀포시
- 대전광역시 서구
- 충청남도 아산시, 논산시
- 평양직할시
- 평안북도 정주시
- 함경남도 북청군, 덕천군
- 황해도 황주군, 봉산군, 연백군, 벽성군, 안악군
제주도에서는 김해 김씨와 제주 고씨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성씨이다.[5]
5. 관련 유적지
- '''봉산사''':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85에 위치한 사당으로, 시조인 강이식 장군을 모시고 있다.
- '''은렬사''':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 622번지에 위치한 경남문화재자료 14호이다. 강민첨 장군의 탄생지(유허지)와 유허비, 모사화 등이 있다.
- '''강민첨 묘''':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 산 34에 있는 충청남도 문화재 제319호이다. 묘소와 홍살문, 신도비, 사적비, 예산재, 경앙문 등이 있으며, 음력 3월 11일에는 춘향제, 음력 10월 5일에는 시향을 올린다.
- '''낙성대''':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산48에 있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이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출생 시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 불린다. 안국사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인 낙성대유지가 있다.
- '''제주도 유배 관련 유적''':
- 1418년(태종 18년) 양녕대군의 폐위에 반대하다 강윤희가 유배되었다.
- 1436년(세종 18년) 은둔 생활을 위해 강인덕이 제주도에 왔다.
- 1506년(연산군 12년) 갑자사화를 피해 강철이 제주도에 왔다.
6. 항렬자
- '''은열공파(殷烈公派)''' - 밀직공, 학사공, 부사공, 사평공, 진사공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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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식(植) 口병(秉) | 희(熙) 환(煥) | 口규(圭) 口서(瑞) | 옥(鈺) 전(銓) | 口수(洙) 口순(淳) | 병(柄) 계(桂) | 口염(琰) 口훈(勳) | 재(在) 기(基) | 口용(鎔) 口황(鎤) | 낙(洛) 준(準) | 口모(模) 口래(來) | 병(炳) 연(然) | 口균(均) 口채(埰) | 현(鉉) 진(鎭) | 口원(源) 口윤(潤) | 수(秀) 표(杓) | 口찬(燦) 口섭(燮) | 주(周) 규(奎) | 口석(錫) 口탁(鐸) | 승(承) 영(永) |
- '''박사공파(博士公派)''' - 진원군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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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在) | 口회(會) 口흠(欽) | 영(永) 한(漢) 원(源) | 口수(秀) 口형(馨) 口원(元) | 희(熙) 창(昌) 대(大) | 口원(遠) 口중(中) 口신(信) | 성(聲) 호(鎬) 석(錫) | 口구(求) 口택(澤) 口순(淳) | 병(秉) 내(來) 모(模) | 口묵(默) 口준(焌) 口현(顯) | 교(敎) 배(培) 응(應) | 口탁(鐸) 口연(鍊) 口종(鍾) | 준(浚) 우(雨) 식(湜) | 口목(穆) 口영(榮) 口화(樺) | 휘(輝) 훈(薰) 형(炯) | 口규(奎) 口은(垠) 口철(喆) | 진(鎭) 갑(鉀) 옥(鈺) | 口철(澈) 口원(沅) 口제(濟) | 환(桓) 직(稷) 삼(杉) | 口열(烈) 口욱(煜) 口병(炳) |
- '''박사공파'''
○세손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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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자 | ○회(會) ○흠(欽) | 영(永) 한(漢) 원(源) | ○수(秀) ○형(馨) ○원(元) | 대(大) 희(熙) 창(昌) | ○원(遠) ○신(信) ○중(中) | 성(聲) 석(錫) 호(鎬) | ○구(求) ○순(淳) ○택(澤) | 병(秉) 모(模) 내(來) | ○현(顯) ○묵(默) ○준(焌) | 응(應) 교(敎) 배(培) | ○종(鍾) ○탁(鐸) ○연(鍊) | 준(浚) 우(雨) 식(湜) | ○목(穆) ○영(榮) ○화(樺) | 휘(輝) 훈(薰) 형(炯) | ○규(奎) ○은(垠) ○철(喆) | 진(鎭) 갑(鉀) 옥(鈺) | ○철(澈) ○원(沅) ○제(濟) | 환(桓) 직(稷) 삼(杉) | ○열(烈) ○욱(煜) ○병(炳) |
- '''소감공파'''
○세손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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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자 | 덕(德) 필(弼) | 재(載) 성(聖) | 철(哲) 진(鎭) | 목(穆) 해(海) | 지(枳) 치(致) | 익(翼) 석(錫) | 규(奎) 순(淳) | 건(鍵) 용(鏞) | 연(淵) 숙(淑) | 영(榮) 래(來) | 희(熙) 열(烈) | 배(培) 준(埈) | 현(鉉) 종(鍾) | 위(渭) 락(洛) | 식(植) 근(根) | 병(炳) 찬(燦) | 기(基) 균(均) | 진(鎭) 용(鎔) |
- '''관서공파'''
○세손 | 20세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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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자 | 석(錫) | 윤(潤) | 모(模) | 노(魯) | 기(基) | 선(善) | 순(淳) | 인(寅) | 하(夏) | 규(奎) | 현(鉉) | 호(浩) | 술(述) | 헌(憲) | 응(應) | 종(鍾) | 수(洙) | 병(秉) |
- '''인열공파'''
○세손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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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자 | 주(周) | 선(善) | 태(泰) | 병(秉) ○식(植) | 환(煥) 희(熙) | ○서(瑞) ○규(圭) | 석(錫) 련(鍊) 전(銓) | ○순(淳) ○수(洙) | 동(東) 계(桂) 병(柄) | ○훈(勳) ○대(大) ○염(琰) | 기(基) 재(在) | ○횡(鐄) ○용(鎔) | 호(浩) 준(準) 락(洛) | ○래(來) ○모(模) |
○세손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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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자 | 병(炳) 연(然) | ○균(均) ○채(埰) | 진(鎭) 현(鉉) | ○기(沂) ○윤(潤) ○원(源) | 환(桓) 영(榮) 표(杓) | ○엽(燁) ○섭(燮) ○찬(燦) | 규(圭) 효(孝) | ○횡(鐄) ○옥(鈺) | 영(永) 승(承) | 주(柱) 근(根) | 시(時) 휘(暉) | 규(逵) 원(遠) | 은(銀) 흠(欽) | 호(滈) 해(海) |
- '''인헌공파'''
○세손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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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자 | 민(玟) | 석(錫) | 해(海) | 근(根) | 연(然) | 균(均) | 호(鎬) | 한(漢) | 수(秀) | 희(熙) | 기(基) | 진(鎭)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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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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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시흥강씨(衿川․始興姜氏),금천강씨시조,강여청(姜餘淸),금천시흥강씨조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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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인구 17%는 ‘김씨’ 성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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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姜氏) 본관(本貫) 진주(晋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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